Chapter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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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500의 신병기를 목갑에 넣고 황연이 있는 북룡대에 갖다주었다. 1500문씩이나 되다 보니 양이 방대해서 목갑으로는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없으니 서너 번에 걸쳐서 왕복하기로 했다. 신병기를 다 날라주자 황연이 내게 말했다.
“폐하, 이 신병기는 설마… 제갈 일족이 만든 것이옵니까?”
“그렇소. 어떻게 알았소?”
“오오… 그렇다면 이건 틀림없는… 섬멸을 위해 만들어진 악마의 병기.”
황연은 매끈한 포신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걸 과연 써도 되는가 싶사옵니다.”
“무슨 말이오? 써야 하니까 가져온 건데…”
“… 이게 등장했으니 차가운 창검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옵니다. 모든 전쟁이 화력전이 될 것이며, 근접병종의 가치는 바닥에 떨어질 것이며, 전장에 옥염이 몰아칠 것이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장수로서 근심하지 아니할 수 없나이다.”
황연의 표정이 매우 심각했다. 단순히 이번 전쟁의 승패를 넘어서 이 신병기가 가져올 혁명적인 변화에 대한 걱정이었다. 나는 황연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았다.
‘신병기의 위력을 보자마자 알아챘기 때문이지…’
제갈사에게 설명을 듣고 위력 시연을 보았기에 황연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은 시연을 봐야 인지할 수 있지만, 이미 제국 대장군으로서 위력에 대해 충분히 감을 잡았던 것이다.
나는 황연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걱정 마시오. 이걸 써서 전쟁에 승리한다고 해서 군인의 정신이 훼손될 일은 없소.”
“그리 단언하시는 이유는…”
“상대도 우리와 마찬가지거나 그 이상일 수 있기 때문이오.”
“……!!”
“황연 장군이니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적인 고려에게는 인세를 초월한 자들이 배후에 있소. 장군에게 준 신병기는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력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 주시오.”
“그건…”
황연 대장군은 뭔가 말하려다 삼켰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짐작했기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나 내 동료들도 황연의 눈에는 똑같이 보이겠지.’
인세를 초월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건 이쪽이나 십이율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전력이 대칭을 이루고 있을 때는 여전히 [인간의 전쟁]인 것이다. 이쪽은 압도적인 전력차로 밀고 나갈 것이고 그러면 전사자는 거꾸로 줄어들 것이므로 이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황연에게 말했다.
“물론 이 무기의 위력이 비인도적인 건 사실이오. 제대로 싸우면 보통 군대는 뼛가루도 남지 않겠지. 그러니 적을 섬멸하기보다는 설득하여 항복시키는 것을 우선하시오. 짐은 장군의 모든 전략적 행동을 용인할 터.”
“명령을 받들겠나이다.”
“그리고 장군, 이광이 적성세력의 수하가 되었단 이야기를 이미 들었을 테지.”
“……”
황연은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들었사옵니다.”
“이광이 적장으로 나오면 어찌할 생각이오?”
“신(臣)은 폐하의 명을 받아 출진했으니 모든 적을 타도할 것이옵니다.”
“좋소. 이광을 죽여도 좋으나 가능하면 살려서 내 앞에 데려올 것을 명하겠소.”
“명령을 받들겠나이다.”
파앗
나는 황연에게 명령을 내린 후 비등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이광이 장군으로 출진하진 않겠지만… 이 정도만 말해도 황연의 부담은 덜겠지.’
황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황실에 대한 충성심을 꺾게 만들고 억지로 내 일에 끌어다 쓰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번 생에 꼭 법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주저하다가는 그 [특이점]이 내 앞에 나타나 전생을 끝장낼지도 모른다.
비등으로 이동한 나는 다두왕국에 도착하자마자 마테오 리치를 찾아갔다. 마테오 리치는 뜻밖의 손님이 와도 허둥대지 않고 말했다.
“당신은 누구시오?”
나는 미리 준비한 광동성주와 그 측근들을 꺼내자 광동성주가 크게 허둥대며 내게 절하며 말했다.
“이마두… 아, 아니 마테오 리치. 이 분께서 바로 대웅제국의 황제이시오!”
“……!!”
마테오 리치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내 정체를 수긍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나는 용건을 꺼냈다.
“마테오 리치, 이 은봉황 조각의 다른 쪽을 알고 있겠지.”
“……”
“그걸 짐에게 다오.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 주지.”
그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폐하, 어찌 은봉황 조각을 원하시는 것이옵니까?”
“짐은 은봉황 조각들이 원래 하나임을 알고 있으며, 이 두가지를 모으면 구 발해 황실의 유적에 진입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짐의 목적을 위하여 꼭 필요하니 그걸 내놓아라.”
“으음… 그럼 그 대신에 천주교를 중원 대륙에 포교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옵소서. 그것만 허용해 주신다면 즉시 넘기겠나이다.”
“차라리 금괴를 주고 말지 과한 요구를 하는군… 현 대웅제국의 국교가 백련교임을 모르는가?”
“알고 있사옵니다. 허나 포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듯 싶으니 간절히 염하옵니다.”
“좋다. 그리하지. 내 이름을 걸고 천주교의 포교를 전적으로 허용하겠다.”
“감사하옵니다.”
스윽
나는 마테오 리치에게서 은봉황 조각을 손쉽게 건네받았다.
‘어차피 포교의 자유 정도 허락한다고 큰 일은 아니야… 이걸로 빨리 발해 황실의 유적을 열어야겠다.’
장기적으로는 변수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이득을 보기에 위험이 적다. 나는 또한 마테오 리치에게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금요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흠칫!
마테오 리치가 깜짝 놀라는 모양이었다. 나는 황제의 명으로 모든 인간의 기척을 물린 후 밀실에 가서 마테오 리치에게 말했다.
“금요를 지키고 있는 서방의 수호자를 구원하기 위해 동방에 에메랄드 타블렛, 수정석비라고 불리는 유물을 가지러 온 거겠지?”
“……!!”
“그리 놀랄 필요 없다. 서방의 사정 또한 잘 알고 있노라.”
“폐하는 대체 어떤 인간이십니까? 제 호위인 검호 한스 탈호퍼조차 폐하의 무공을 측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면세계의 뒷사정까지 그리 정통하시다니…”
“내가 어떻게 비밀을 알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앞으로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지.”
나는 그렇게 말한 후 마테오 리치를 진중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수정석비는 우리가 갖고 있다. 너희를 위해 나중에 빌려줄 의향도 있지. 단, 너희가 본국에 전적으로 협조한다면.”
“이미 저는 폐하께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사옵니다.”
“아니. 서방의 모든 수호자 세력과 종교가 짐에게 복종하며 열국을 제패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확약을 받아야겠다.”
“……”
“너희가 도와준다면 서방 진출로 패권을 잡기도 용이할 터.”
마테오 리치는 내 요구에 질린 표정이었다.
“폐하… 세상을 정복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알렉산더 대왕과 징기즈 칸도 하지 못한 일이옵니다.”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자들이 했든말든 짐이 알 바 아니다. 내게 있어서 세계 정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니까.”
“……?!”
“이미 너희 예수회 측은 서방의 마도사 세력 때문에 많은 위기에 몰려 있겠지.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도와준다면 너희는 숨통이 트일 뿐만 아니라 반격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영제국에 있는 마도사단을 해치울 때 큰 도움을 줄 수 있지.”
“으음…”
“이 정도로 좋은 조건도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만.”
“생각할 시간을 하루만 주시옵소서.”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다. 난 지금도 바빠. 도와주지 않을 거라면 나는 구태여 너희에게 손을 내밀 생각이 없으니, 이만 가 보겠다.”
“……”
내가 마테오 리치를 압박하자 그는 크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알겠사옵니다. 저희 예수회는 폐하를 물심양면으로 돕겠으니 부디 동맹관계가 되어주소서.”
“좋아, 잘 말했다. 앞으로 서로 돕고 살지.”
나는 손쉽게 예수회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사실 이 협상은 미리 책사들이 내 준 계책이었고 그들이 해준 진언대로 협상을 이끌면 아주 쉬웠던 것이다. 지금도 망량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다두왕국에 있는 마테오 리치를 압박하여 은봉황조각을 얻고 예수회도 복종시키시오. 예수회는 서방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니 이후 서방의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를 쓰러뜨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망량의 말로는 이것만 해도 서양 정복이 10년은 빨라질 것이라 했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파앗!!
나는 그대로 발해의 유적에 도착해 2개의 은봉황조각을 음각에 집어넣었다. 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왕실의 문이 열리자 그대로 유적 안으로 들어갔고, 군왕의 영들이 모여있는 걸 화안금정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군왕의 영들에게 말했다.
“발해의 열왕들이여. 나는 중원의 황제인 백웅이다.”
쿠구구구…
[뭐라고.]
[중원인 따위가 감히 여기까지…]
발해 군왕의 영들은 크게 노하는 기색이었지만 내가 이어서 한 말에 모두 혼란 상태가 되고 말았다.
“나를 따른다면 그대들을 세계의 파멸에서 구원해 주겠다.”
웅성…
내 말은 정곡을 찔렀는지 그들이 술렁이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군왕의 영 중 하나가 불신어린 기색으로 말했다.
[헛소리하지 마라. 너 같은 아해 따위가 무슨 수로 세계의 파멸을 막는다는 말이냐.]
“헛소리같은가? 나는 지금 당장도 너희를 몰살시킬 수 있거늘.”
[후후, 헛소리… 으아악!!]
이혼대법
흡결
내가 이혼대법으로 백을 잔뜩 빨아들이자 내 오른손으로 군왕들이 비명을 지르며 빨려들어왔다. 내가 이대로 혼을 먹어치우면 그대로 망자처럼 껍데기밖에 남지 않을 것이리라. 나는 아우성치는 영혼들을 도로 튕겨내었다.
[크아아아.]
“보았는가? 너희는 독안에 든 쥐다. 이 장소에 영혼이 종속되어 있으니 내 이혼대법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이, 이 잔인한 놈! 안식을 추구해 이 땅에 은거하는 제왕들을 어찌 이리 겁박한단 말이냐!]
한 놈이 분통을 터뜨렸지만 나는 냉랭하게 대꾸했다.
“너희가 그리 선량한 놈 같지는 않다. 너희를 겁박한다고 해서 짐의 양심에 한치도 어긋남이 없음을 알아라.”
[뭐라고?]
“결국 너희를 따르던 백성들은 종말에 고통받든말든 왕의 권위에 기대어 너희만 죽은 후에도 세상의 파멸을 피하려 한 이기적인 놈들이 아니냐! 종말 그 자체를 극복하려 하는 게 바로 진정한 왕의 의무일 터인데 이 유적을 짓는데 발해백성들의 피땀이 들지 않았는가? 그리고 종말이 다가와서 모든 영혼이 파멸할 것이라는 고왕의 예언을 백성들에게 제대로 고하지도 않았지? 너희는 자기만 살려고 부하들을 착취한 악독한 놈들이다.”
[……]
내 말에 발해의 군왕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반박할 말이 없는 탓이다.
나는 은근히 말을 이었다.
“… 다만 너희 처치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내게 따른다면 진정으로 세계의 파멸을 막고 너희의 모든 불안감을 해소해 주지.”
[어떻게 세계의 파멸을 막겠다는 말이냐?]
“나는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통합된 세상의 힘을 이용해서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옛 지배자]들과 교섭할 것이고 종말을 뒤로 미룰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
“자, 내게 은봉황을 내놓아라. 그리고 내 일에 전면협조하라.”
[… 어쩔 수 없지.]
그들은 완전히 납득한 기색이 아니었으나 내 무력 때문인지 어쩔 수 없는 기색이었다. 약간의 채찍 후 당근을 던져주자 그대로 굴복한 듯 이윽고 은봉황이 소환되어 내 손안에 들어왔다. 나는 은봉황을 받아든 후 말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물어보라.]
“너희는 십이율주 하은천에 대해 알고 있는가? 그리고 놈이 다루는 봉황, 십이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가.”
웅성
발해 군왕들은 서로 뭔가 영언으로 이야기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이 앞으로 나와서는 말했다.
[알고 있다.]
“역시 발해의 시대에도 십이율이 존재했구나. 너는 십이율주와 직접 만나본 적이 있나?”
[음… 사실은 그 자가 단의 일족으로 내 아들을 영입했었다.]
“뭐라고?”
[내 아들인 광현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났었다. 그리고 발해의 유민들은 앞으로 고려에 복속될 것이라 했으며… 모든 게 정해진 역사대로 흘러갈 것이라 했다.]
“… 정해진 역사대로?”
묘한 말이다. 내가 팔짱을 끼며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 때 대인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대는 혹시 십이율주와 싸우는 중인가?]
“그렇다. 그와 단의 일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고려의 배후에 있다.”
[그렇다면 하백을 조심할 것을 권하겠다. 하백이 그 자를 돕는 한 십이율은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뭐? 하백이란 건 십이율주의 직책 이름이 아닌가.”
[아니다. 그 자의 뒤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 때문에 우리 발해의 군왕들은 하백으로 인해 큰 낭패를 본 적이 있다.]
“……?!”
뭔 소리야?
하백이란 건 직책명이 아니라 실제로 뭔가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하백은 정령이다. 그리고 십이율주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하백이란 존재가 온갖 전장을 휩쓸고 다니는 게 목격되었다. 그 진정한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발해국의 술법사들도 하백을 당해내지 못해서 고려를 감히 침공할 수가 없었다.]
“으음.”
발해국의 술법사들은 발해국의 왕실 유적을 만들 정도로 강한 술법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러한 술법사들이 하백을 당해내지 못했다는 건 하백도 인외급의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리라.
[조언은 여기까지다. 이제 우리를 그만 겁박하고 나가주길 바란다.]
“알았다.”
왠지 큰 정보를 얻은 느낌이다.
파앗
내가 은봉황을 얻어서 본진으로 되돌아오자 기억을 전해받은 망량이 말했다.
“내가 알기로 하백이란 고사에 따르면 물의 정령이자 수장인 존재요. 발해 왕들의 말대로 하백이 실존할 가능성은 높소. 하지만 그렇다면 좀 이상한 게…”
“뭐가 이상하오?”
“십이율주는 여태껏 하백이란 존재를 전면에 내세운 적이 없었소. 심지어 세계수의 결전에서도. 그 자가 자기가 가진 힘을 많이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좀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소.”
“꼭 양파 같은 놈이군… 하백이란 게 소환수일 가능성이 높지 않소?”
“……”
망량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여러 가지 짚이는 게 있긴 하지만… 우선 황연에게는 수공을 조심하라는 서신을 보내놓겠소.”
“내가 그냥 바로 갔다 오겠소.”
“아니오. 황연에게 너무 자주 들락거리는 건 그의 지휘력을 금가게 만든다. 황제가 수시로 방문하는 게 전장 지휘관에게 좋은 일도 아니다. 어차피 전이문을 쓰면 금방이니 너무 혼자서 다 하려고 들진 마시오.”
“음.”
나는 망량의 말이 옳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진소청을 좀 만나 보시오.”
“진소청을?”
“그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망량의 말에 별채에서 쉬고 있는 진소청을 찾아갔다. 진소청은 아직까지 거취가 확정되지 않아서 감금에 가까운 상태로 황궁의 별채에 있었는데, 내가 찾아가자 내게 예를 갖추었다.
“폐하, 왕림해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 진소청. 내게 할 말이 있다고.”
진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현 승상께 폐하의 진짜 정체에 대해 얼추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생자에게 어떻게 얽히게 되었는지도…”
“……”
“솔직히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저를 전생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으시는 것이옵니까?”
“그건… 진천휘 때문이오.”
나는 솔직히 털어놓기로 했다.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대의 아버지인 진천휘는 과거 [기어오는 혼돈]의 가면 중 하나가 아닌지 의심받은 적 있소. 그리고 그에 연계된 그대 또한 혹시나 그 자의 단말이 아닐까 의심되었던 것이오. 그래서 잠정적으로 그대를 전생 동료에서 제외시켰소.”
“말도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존재 따위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
진소청의 말이 맞다. 그가 [기어오는 혼돈]의 가면이자 단말이라는 상상은 할 수도 없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어오는 혼돈]은 진작에 내 정체를 알아챘어야 정상이다. 왜냐하면 전생 초기부터 나는 지속적으로 진소청과 어울렸고 그에게 흑요석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사들은 만의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를 잠정적으로 동료진에서 제외시키고 있었다. 진천휘가 너무 의심스럽기 때문에 진소청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신의 능력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니… 뭐라 할 말이 없군.”
“폐하께서는 앞으로도 저를 동료로 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그렇지 않소. 당신의 힘이 꼭 필요하오. 그러나, 적어도 내 [특이점]이 해결되어야 이 숨막히는 상황을 벗어날 수가 있겠지.”
내 말에 진소청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폐하, 그렇다면 망량선사에게 저를 데려다 주시옵소서.”
“……?”
“망량선사라면 설령 제가 단말이 되어 날뛴다 하더라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이대로 황궁에서 허송세월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렇구려. 데려다 주겠소.”
확실히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즉시 진소청을 데리고 망량선사를 다시 찾아갔다.
파앗
나는 진소청을 데리고 오자마자 망량선사에 의해 꿈의 세계로 향했고, 꿈의 오솔길에서 망량선사에게 말했다.
“망량선사! 진소청이 [기어오는 혼돈]의 가면이거나 단말인 건가? 말해 줘!”
망량선사는 내 질문에 곧장 대답했다.
[아니다. 그는 순수한 인간이다.]
이 세상에서 혼돈의 끄나풀을 식별하는 데 있어서 망량선사보다 더 정확한 기준이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구만! 됐어!”
[그러나, 양쪽에 모두 인과가 연결되어 있지.]
“… 엥? 무슨 소리야.”
[그는 미래에 선택하게 될 것이다. 양면성을 지닌 세계에서 그 자신이 무(武)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영문 모를 소리를 하던 망량선사는 의미심장한 말을 이었다.
[진소청은 당분간 내가 맡아두겠다. 그리고, 너는 죽기 전에 진소청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파앗
“……”
나는 꿈의 세계에서 나옴과 동시에 망량선사의 마을에서도 튕겨나온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진소청은 금세 사라져 있어서 망량선사가 그를 보호하게 되었음을 이해했다.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죽기 전에…?’
설마 진소청이 날 죽이러 온다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에이, 모르겠다.”
잡생각을 지우고 다시 황궁으로 향했다.
이제 전쟁의 때가 임박했다.
아직도 준비할 게 많으니 서둘러 움직여야만 한다.
그리고 칠 주야 후 – 대웅제국과 고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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